삶이란 무엇인가, 수전 울프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먹고 자는 본능적인 영역에 속하는 개인의 안위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의 영달을 추구해야 하는가, 더 넓혀서 나와 가까운 가족, 친구의 그것까지 생각해야 하는가?
혹은 애초에 어떤 가치관을 고정해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를 깨는 것처럼 한 단계씩 클리어해가며 삶의 추구 방향을 수정해 나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클리어라는 자기만족의 기준이 삶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평소 지인이나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종종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곤 한다. 물론 아주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질문 자체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며 때때로 다른 사람의 관점이 나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전공의 시절이 끝나고 - 그 땐 심지어 잠만 잘 자고 밥만 제때 먹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에 비하면 - 지금은 신체적으로는 전에 없을 만큼 편하게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오는 만족감과 자극은 그때보다 떨어진 것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만큼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으나 자아에 갇혀 아무리 생각해봐야 막다른 길에 부딪혀 같은 자리에 맴도는 경우가 많아 생각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그 와중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와 어디 한번 책까지 쓸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은 삶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반부는 저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 강의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저자가 부탁한 다른 사람들이 강의에 대한 논평을 적어두었다. 허나 후반부의 논평을 읽으려 해 보았으나 철학적 기본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실천 이성이니, 공리주의니 하는 말들이 나올 때마다 머리가 잠시 정지했고, 그런 용어들이 갖는 의미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전반부의 장황한 내용이 머리에 와닿지 않아서 먼저 글로 정리해두려고 한다.
첫 번째 강의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1)
자기이익 vs 더 높은 가치(전통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믿어지는 도덕성과 의무)
일상적 담론들에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에 대해 '자기 이익'과 '더 높은 가치'에 대한 이원론을 많이 이야기한다. 비슷하게 칸트가 얘기한 실천이성(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이라는 개념에도 이원론이 존재하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쾌감이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령하는 한 가지와 단호하며 조건 없이 도덕적 의무에 의한 명령을 내리는 한 가지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이원론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하며, 역설적으로 이 부분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범주라고 이야기한다.
2)
제 3의 가치
그 '제 3의 가치'에 대해 저자는 허리를 다칠 가능성을 각오하고 친구의 이삿짐을 도와주는 일이나, 아이의 학예회 때 입힐 의상을 밤을 새워 만드는 사람의 예를 들며 이를 사랑의 근거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motivation들은 그 과정이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우며 이는 개인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이때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을 초월한 외부의 가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근거가 이끄는 행동들이 모두 타당하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사랑 자체도 언제든 어긋나고 착각에 빠질 수 있으며, 우리가 사랑하려는 대상이 알고 보면 그럴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가 대표적이다.)
즉, 이러한 제 3의 가치로 인한 행동과 선택이 핵심적이긴 하나 그 대상의 qualification이 동반되어야 한다.
3)
(저자가 제시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여'할 때 삶의 의미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주관적, 객관적 특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이를 다시 이렇게 표현한다.
'주관적인 이끌림'이 '객관적인 매력'을 만났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개념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널리 알려진 두 가지 관점을 합친 거라고 설명하나 잘 이해가 안 된다.)
4)
성취 관점
널리 알려진 삶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중 첫 번째는 성취감이다. 나도 이 감정을 굉장히 좋아하며 어쩌면 이런 느낌은 중독적이기 까지 하다. 이는 열정과 관련이 있다는 특징이 있고,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긍정적 감정들과는 약간 다르게 성취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근심, 고통,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 감정이 수반된다.
하나, 은연중 알고 있듯 성취 관점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기에 불충분하다. 마약에 빠진 사람, 스도쿠에 중독된 사람, 톨스토이를 필사하는 사람 등이 그렇다.
신화 속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벌을 받아 평생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만약 신이 이를 불쌍히 여겨 시시포스가 이를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게 만드는 주사를 놓는다면 어떨까? (이는 'Sisyphos Fulfilled'라고 하는 전형적인 철학적 사례라고 한다.) 그의 삶은 고통스러운 삶에서 최고의 삶으로 올라섰을까?
성취감은 주관적인 요소임을, 또한 모든 주관은 필연적으로 기만, 착각, 오류,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의 변화된 삶이 여전히 의미 없는 삶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5)
연립 관점
두 번째 관점은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하는 삶이라는 관점이다.
여기서 더 크다는 것은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 가치의 크기이며 자신보다 중요한 존재를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더 큰 가치를 지닌 존재에 관여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려견에 대한 헌신, 타인 - 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결코 크지는 않은 - 에 대한 헌신의 예를 들며)
우리가 성취감을 느끼는 시시포스의 예에서 허무함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렇다. 그는 충분히 성취감을 느끼며 즐겁지만 과연 그 행위가 다른 존재에 관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한 번 사고 시험을 비틀어,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가 시시포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인근 마을에 병을 퍼트리는 독수리 떼를 쫓아버리는 기능을 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이 또한 본인이 그 객관적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허무함을 지울 수 없다. 즉 연립 관점에서도 행위의 주체가 그 객관적 가치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6)
객관성
왜 인간은 객관성을 염원하는가? 학자들은 이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욕망 혹은 '신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으로 설명한다. 이에 더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다시 말해 이는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본능 및 고독과 멀리하려는 욕망과도 관련이 있다. 흔히 이를 '남의 시선에 신경 쓴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누가 내가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거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에는 내가 하는 일이 객관적으로 가치 있다고 믿는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그렇다면 과연 '가치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자연스레 도달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강의가 이를 다룬다.
1)
객관적 가치
이를 백지상태로부터 추론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특정 사례를 가정하여 이 삶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객관적 가치'가 갖는 특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보편화, 기계화되어 일반적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지루하게 느끼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이 삶의 의미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힘들고 어렵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기준을 정의하기에는 추상적이다.
이에 저자는 주체의 태도와 (적어도) 부분적으로 독립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택하지만 이 또한 합리적이지는 않다. 시시포스의 모습을 보고 이웃들이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는다고 하여 이 삶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가? 이러한 관점을 택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우려가 따른다.
2)
엘리트주의의 위험
그 일이 가치가 있고 없는지를 누가 판단하는가? 그 가치 위에 군림하는 특정 집단이 편향된 관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도 이를 판단할 수 없으며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 행위에 대한 가치도 항상 달라진다.
3)
객관적 가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
이 부분은 몇 번을 읽어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그 누구도 객관적 가치에 대해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의 의미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
다시 삶의 의미에 대한 이원론으로 돌아가,
빵을 굽는 행위의 사례를 들어보자.
정성껏 반죽을 준비하고 시간에 맞춰 빵을 굽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작은 고통을 수반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을 굽는 사람들은 지천에 널려 있다. 이 행위의 이유를 '자기 이익'이나 '도덕적 가치'로만 이해하려 들면 까다롭다.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100% 자기 이익이나 도덕적 가치로 이해할 수 없다. 빵이 주는 어떤 가치에 주관적으로 '끌렸기' 때문이다.
빵은 나의 외부에 있는 대상이며
내가 좋아하고, 흥미 있어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외부에 시선에서 존재 자체로 좋고 흥미롭고 가치 있다. (이는 저자의 이야기이며, 모든 사물이 이렇게 명료하게 나눠질 수는 없다. 개념만 이해해보자.)
도덕성, 자기 이익에 더해
객관적 가치의 개념(이 뭔지는 아직 모를지라도, 그 개념 자체를)을 인정해야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머릿속에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뒤의 논평을 읽어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추가하도록 하겠고, 없으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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