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취미 생활/책|2023. 7. 19. 13:37

 

소회

 

어렸을 때 읽은 정재승 교수님의 과학 교양서 이후로 오랜만에 읽게 된 과학 교양서이다. 

사실 저자께서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고, 다만 양자 역학 교양서라는 문구를 보고 집어 들게 되었다.

결론은 '고등학교 시절 이 책을 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정도로 알차고 재미있었다. 

글도 아주 쉽고 실감나게 쓰여 있어서 마치 눈 앞에서 과학자들이 싸우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과학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물리와 천문학을 주로 공부했었는데, (아주 기초적인 부분 뿐이고, 결코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솔직히 시간이 많이 지나며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당시에 내가 재미를 느꼈던 것은 물리학 자체라기 보다는 미적분을 이용하여 문제를 푸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지적 능력의 차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어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뭔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져서 자연과학 공부를 하기를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었다. 

 

책에서는 우리가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들어봤던 여러 과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정립한 원리, 정리 들이 나온다.

코펜하겐 해석,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 콤프턴 효과, 이중 슬릿 실험, 정상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런 구구절절한 법칙, 정리들을 배울 때에는 도대체 이런걸 왜 가르치나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다. (특히 정상파! 이런거 왜 가르쳐주나?)

당연하게도 그렇다보니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단지 기초 미적분학으로 문제 푸는 데에서 재미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양자역학(이라고 쓰고 현대의 물리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이런 법칙과 정리들이 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문맥을 함께 쉬운 비유를 섞어 이야기해줌으로써 물리학이라는 것에 맛만 본지도 10년이 넘어가는 나로 하여금 책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뭐든지 공부를 할때 그 개념이 나온 이유, 그 개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알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일맥 상통하며, 재미있게도 저자는 책의 맨 뒤에 "양자역학 제품 사용 설명서"를 통해 이런 점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양자역학 이라는 제품은 무엇인가? 왜 써야 하는가? 쓰면 뭐가 좋은가?)

 

이러한 느낌들에 더하여 시대를 수놓았던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맛보면서 마음 속이 것이 느껴졌다. 

 

 

 

정리

책은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기가 꺼려지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 기억 속에 잘 저장해둘 수 있도록, 재미 삼아 시간 순서대로 책에 나온 양자역학의 역사를 나만의 언어로 "간단하게만" 다시 정리해보도록 하자. 나중에 태어날 아이가 크면 설명해 줄 재료를 만드는 측면도 있다. 

 

 

원자의 구조

우리는 이제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원자가 얼마나 웃긴지는 잘 모른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자 핵은 원자 반지름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전자는 원자핵보다 작아서 사실 원자는 텅 비어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이를 거시세계로 확대해보면 마치 서울시만한 원자가 있다고 했을 때 원자 핵은 농구공 크기 정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거의 텅 비어있는 원자는 크기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양전하를 띄는 원자핵과 음전하를 띄는 전자가 왜 붙어버리지 않고 유지될까?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

이중 슬릿에 전자를 쭉 쏴줄 때 전자가 입자라면 줄무늬는 2개가 생겨야 한다.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았고 마치 전자가 파동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전자는 파동일까? 파동이라면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 

전자를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씩 쏴도, 역시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난다. 전자는 질량을 갖는 입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쨌거나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위의 질문이 일부 해결된다.

 

 

전자의 파동성

원자핵 주위를 입자인 전자가 돈다고 가정하면, 금새 원자는 붕괴되고 만다.

주변을 원운동한다고 할 때, 이는 가속운동이기 때문에 전자의 가속운동으로 전자기파가 방출되고 에너지가 점점 감소하여 인력으로 인해 원자핵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기타에서의 "정상파"처럼, 파동성을 갖는 전자는 "특정 길이"만의 파장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최소 반지름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는 붕괴하지도 않고, 무한히 줄어들 수도 없는 것이다.  

 

 

 

전자의 이중성

다시 이중 슬릿 실험으로 돌아가 보자. 질량이 있는 입자인 전자는 어떻게 파동의 성질도 띄는 것일까?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까? 전자가 쪼개지지 않는 한 그렇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자가 슬릿을 지나가는 순간 사진을 찍어서 확인한다고 해보자.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줄무늬는 2개로 변한다. 

전자를 쳐다보면 2개 중 1개의 구멍만 지나고, 쳐다보지 않으면 2개를 동시에 지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시세계에서 우리의 경험에 기반한 상식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런 결과 때문에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설명을 거부했다. 

 

 

코펜하겐 해석

현재 양자 역학의 정통 이론인 코펜하겐 해석은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제창한 해석이며 보어가 살았던 덴마크의 수도 이름을 따서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 해석의 중점은, 측정 전에는 미시 세계에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지만 측정하게되면 중첩이 깨지고 거시 세계의 한 상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거시세계의 예를 들자면, 달을 보기 전에는 여기저기 중첩 상태에 있다가 내가 달을 보는 순간 달이 그 위치에 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는데, 

1) 측정의 정체란 무엇인가?
2) 우주를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는 것이다. 

 

이러한 아킬레스건을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찌르게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슈뢰딩거는 사고실험을 통해 코펜하겐 해석이 둘로 나눠놓은 세계를 이어본다. 

미시세계의 원자가 있는데 이 원자는 A와 B 두 가지 상태를 가질 수 있는데, 어떤 기계장치가 있어서 A일 때에는 아무 일도 없지만 B일 때에는 독약이 든 병을 깨서 상자 안에 든 "거시세계의" 고양이를 죽이게 된다. 

 

원자는 양자 역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A, B 중첩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거시세계에 속하는데 삶과 죽음 사이에 중첩되어 있는가?

 

 

결어긋남 이론(Decoherence)

아직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나온 결어긋남 이론이나 다세계 해석이 일부분 설명한다고 한다. 파동이 간섭무늬를 잘 보이려면 두 파동의 결이 잘 맞아야 한다. 이 결이 어긋나면 아무리 파동이라고 할지라도 간섭무늬는 커녕 엉망으로 보이게 되는데 파동이 서로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결어긋남'이라고 한다. 따라서 슬릿을 지나며 간섭무늬를 보이던 전자에 "관측으로 인해 결어긋남이 발생하면" 마치 입자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지지하는 실험중 하나는 1999년 안톤 차일링거 팀의 실험으로 그들은 C60이라는 거대분자를 가지고 이중슬릿실험을 실시했고, 이런 큰 분자에서도 여러개의 줄무늬를 확인하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분자량 5,800의 인슐린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단, 이 분자가 스크린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 관측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관측의 주체

여기서의 관측이란 단지 눈으로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의 대상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뜻한다. 

거대분자가 스크린까지 날아가다가 공기와 부딪히면 이를 통해 측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결어긋남이 발생한다.

따라서 진공 상태에서 실험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관측의 주체는 공기분자인가?

실험팀은 추가적인 실험을 했는데, C60 분자에 열을 가해, C60이 흑체복사를 하게 하여 실험을 한 것인데, 이 때에도 마찬가지로 파동성이 사라졌다. 즉, 측정 대상을 제외한 모든 우주가 관측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고양이나 사람의 경우에는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결어긋남이 일어나고, 따라서 양자 역학적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흑체 복사와 막스 플랑크

위에서 나왔듯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가 빛을 내뿜는 현상을 흑체 복사라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흑체 복사를 하지만, 이 빛이 파장이 짧은 적외선이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다. 

이 흑체복사는 온도에만 의존하는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는데,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막스 플랑크는 이 빛의 에너지가 "띄엄띄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연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서울시 사람들의 체중을 쟀을 때 50kg, 55kg, 60kg 처럼 5의 배수인 몸무게만 있고 그 사이값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치 바구니에 든 공처럼 빛이 입자 덩어리로 이뤄져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막스 플랑크는 이를 1900년도에 발표하였는데 20세기의 시작과 함께이다. 재미있게도 당시에 시행된 모든 실험은 빛의 파동성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이 사실에 대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다만 그는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고 했을 뿐이고, 처음으로 빛이 입자라고 분명하게 말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빛의 이중성

빛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1672년 뉴턴에게 거슬러 올라간다. 뉴턴은 빛이 직진하는 입자라고 주장하였으나, 1803년 토머스 영의 빛의 이중슬릿 실험으로 빛이 파동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다.

 

이후 1862년 맥스웰이 빛의 파동 방정식을 발견했고, 1888년 헤르츠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으로 보였으며, 1901년에는 전자기파로 무선 통신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일개 특허청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이 빛이 입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발표 이후 15년간 이를 지지하는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지만 1920년 콤프턴의 실험을 통해 빛이 당구공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보여짐으로써 뒷받침 되었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소리인가?

 

 

다시, 전자의 이중성

원자에서도 위와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데, 러더퍼드가 제시한 고전적인 태양계 모형을 닐스 보어가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고전 모형이라면 전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고 꼬꾸라져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기 대문에 러더퍼드의 모양을 받아들이되, 불연속적인 '정상상태'에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런 띄엄띄엄한 궤도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전자가 이 궤도 사이를 순간이동 하는 것인가? 참 말도 안되는 이론일 수 없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수 원자의 스펙트럼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바로 보어의 모형이었다. (각운동량의 양자화)

 

하지만 수소에서는 잘 적용되었던 이 모델은 원자가 복잡해질 수록, 아니 심지어 헬륨에서조차 잘 들어맞지 않았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이런 문제들을 수학적으로 해결한 사람이 하이젠베르크이다. 마치 갈릴레이와 뉴턴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하이젠베르크는 볼 수도 없는 전자나 양성자의 위치, 운동으로 왈가왈부 할 거 없이 측정 가능한 양 사이의 관계만을 근거로 기반을 정립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가 원자를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원자가 흡수/방출하는 빛과 관련한 양들로 접근하였는데, 

흡수 방출되는 빛은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며, 전자가 2개의 정상 상태(m, n)을 뛰어넘을 때 발생하므로 자연수 m, n으로 기술된다. 

그는 이 두 자연수를 이용한 2차원 행렬을 이용하여 빛의 진동수, 전자의 위치, 전자의 운동량을 기술하였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을 행렬 역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이러한 역학을 물리학자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드 브로이가 등장했다. 

 

 

루이 드 브로이

콤프턴이 빛의 입자성을 증명할 즈음, 드 브로이는 전자가이 파동이라는 논문을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는데, 그 요지는 전자의 운동량이 파장의 역수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것인데 운동량은 입자의 성질, 파장은 파동의 성질인데 두 물리량을 등호로 이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일견 말도 안되어 보이는 이 이론은 보어의 양자 조건을 잘 설명했다. 보어의 '정상 상태'가 파동의 '정상파'와 이어진 순간이다. 

 

파동은 물리학자들에게 굉장히 익숙한 대상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잘 받아들여졌고, 이제 그들에게는 전자의 파동을 기술할 방정식이 필요했다. 

 

슈뢰딩거

그걸 해낸 것이 슈뢰딩거였다. 

이렇게 생겼대요

뭔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자의 파동성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물리학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동일한 결과를 주었다. 하지만 이 '파동'이 "무엇의 파동"인지는 아직 모호했다. 

 

아무튼 하이젠베르크, 드 브로이, 슈뢰딩거에 의해 양자 역학의 시대가 열렸다. 

 

 

 

그럼 된 건가?

어찌됐던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전자는 파동이며 동시에 입자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는 기존 물리학을 배제하고 관측 가능한 양 만으로 새로 행렬역학을 만들었으며, 띄엄띄엄한 상태들 사이의 불연속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전자가 파동이라는 가정을 두고 결과를 얻었고 그 어디에도 불연속에 대한 함의는 없다.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를 두고 물리학자들 사이에 격돌이 벌어졌고 승자는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고민

하이젠베르크도 그의 이론에 뭔가 빠진게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가정에 기반하는데, 그것이 측정 장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였다. 측정 자체가 전자의 운동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교란) 그 결과는 교란에 의한 불확실성을 반드시 포함한다는 것이다.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이를 주제로 두고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격돌했으나, 승자는 코펜하겐 해석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려면 두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확률 해석과 불확정성 원리가 그 것이다. 

 

 

 

결정론과 비결정론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유 의지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가? 일견 철학적인 질문으로 보이는 이것은 물리학계에서도 대두되었다.

 

뉴턴 역학에서는 초기 조건과 외력이 주어지면 물체가 어떻게 운동할지 모두 알아낼 수 있다. 

측 초기 속도와 가속도를 안다면, 시간이 얼마가 지나던 속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점화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일반항이 존재하는 유형의 경우 시간이 얼마나 지나던, 식만 주어지면 모든 시간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일반항이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경우 마치 내년 크리스마스의 날씨와도 같이, 분명 무언가 변수들에 의해 결정은 지어지나, 너무 복잡하여 실제 결과는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다. 

 

실제 세계는 후자와 비슷하며, 이를 모두 알고있는 가상의 존재를 물리학에서는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전자는 중첩으로 인해 관측 전까지는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전자의 위치에 관한 한 양자 역학은 비결정론적이다. 관측 전에는 결코 결정될 수 없고 오직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 신은 매 순간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두 가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참 어려운 불확정성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첫째는 파동성을 이용하는 것으로,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빛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구멍이 점점 작아지면 통과한 빛의 영역도 점점 작아지게 된다. 하지만 구멍의 크기가 어느 이하로 작아지면 빛의 크기가 오히려 커지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빛의 파동성으로 인한 회절 때문이다. 

 

빛은 광자라는 입자이기도 한데, 구멍이 점점 작아지면 광자가 구멍을 지나가는 위치를 점점 정확히 알게 된다. 정확히 얘기하면 광자의 진행방향의 수직인, 벽면에서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수직 방향 운동량은 점점 불확실해지기 때문에 빛이 퍼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2) 둘째는 대표적인 것으로, 측정 행위가 운동량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자 하이젠베르크 본인의 설명이다.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빛을 쪼여야 하는데 이때 분해능이 커지려면 빛의 파장이 짧아져야 한다.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광자의 운동량이 커지기 때문에 정확히 보려고 할 수록 광자와 전자의 충돌로 인한 전자의 운동 변화가 커진다.

반면, 전자에 교란을 덜 주기 위해 운동량이 적은( = 파장이 긴) 빛으로 관측하려고 하면 분해능이 떨어져 위치의 부정확도가 증가하게 된다. 두 물리량이 상보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2) - 1. 

그런데 지긋지긋한 양자 역학의 측정 문제를 광자와 전자의 충돌이라는 고전적인 역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꺼림칙하다. 그래서 1998년에는 이런 문제를 다음과 같은 시도로 해결하였다. 

양자 역학에는 '얽힘'이라는 성질이 있는데 그들은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전자를 '건드려' 교란하지는 않았지만 전자가 어떤 슬릿을 지나갔는지 확인하였고 아주 놀랍게도 이러한 방법으로 측정을 해도 줄무늬가 사라졌다. 

 

 

마무리

여기까지 책의 1부 일부 내용을 정리하였다. 

그 다음에 다루는 EPR 패러독스나 벨의 이론, 그리고 2부의 내용들은 좋은 내용들이지만 나중에 궁금해지면 다시 읽어보기로 하자. 

 

양자역학과 근대 물리학에 대해 쉽게 설명한 이 책에서 가장 얻어가는 점은,

바로 시대를 풍미한 물리학자들이 어떤 주제에 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얼마나 창의적이고 대담하게 해결하였는가이다. 그 위대한 아인슈타인조차 직관의 덫에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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